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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s

[Message] 용서 1

2025, 0615

용서 1

Message by 윤영주

 

Scripture: 마태복음 18 35 Topic: 관계를 지속시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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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용서의 본질과 중요성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죄와 복수의 연쇄 속에서 '용서가 왜 필수적이며, 진정한 용서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용서의 필연성 : 깨어진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

현대 사회의 영화, 만화, 책 등 많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죄와 복수를 주된 주제로 다루지만, 성경적인 '용서'로 귀결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죄와 복수의 연쇄는 한쪽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끝나지 않으며, 복수가 없는 완벽한 세상은 상처 주는 경우가 없는 곳이어야 하지만, 이 땅에서는 인간이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죄를 짓기 때문에 용서가 필수적입니다.

 

모든 관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더 많이 기대하고, 그만큼 더 많이 상처받게 됩니다. 따라서 용서가 없다면 어떠한 관계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 :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용서의 필요성을 '종들의 빚을 청산하는 왕'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에 기반을 둡니다.

 

세상에서는 존재의 목적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존재를 지으셨고, 모든 존재에 목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선과 악이 존재하며,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은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며, 간음은 관계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반하고, 도둑질과 탐욕은 관대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며, 거짓말은 진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생각, , 행동으로 인해 모두 하나님께 빚진 자들입니다.

 

비유 속에서 '만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가 15만 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으로, 스스로는 절대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상징합니다. 이는 지옥에서의 고통으로 갚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의 빚을 절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이 만 달란트 빚진 종이 왕에게 애원하자, 왕은 그 종을 용서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의 빚에 대해 간청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서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세상의 종교와 달리 착한 일이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할 때 값없이 구원을 주십니다. 로마 가톨릭이 믿음으로 하는 착한 일을 구원의 조건으로 말하는 것과 달리, 성경은 믿음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이며, 믿음으로 하는 착한 일은 구원의 목적이라고 가르칩니다. , 우리가 착한 일을 하기 위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의 이중성과 용서하지 못함의 위험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은 나가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노동자의 100일치 품삯) 빚진 동료의 멱살을 잡고 목을 조르며 갚으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큰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기도하지만, 남이 나에게 죄를 지었을 때는 "나는 저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용서하기를 싫어합니다.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가지면 용서는 불가능합니다. 만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느끼고 있다면, 용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과의 동행이 아니라 단순히 종교 생활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종교 생활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게 만들고, 남의 잘못을 이해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며, 신앙과 교제의 기쁨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이 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용서의 참된 의미와 가능성

용서하지 않은 종의 결말은 비참했습니다. 주인은 그를 감옥에 가두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 두게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증거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려고 노력합니다.

 

용서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용서는 범죄자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은 옳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그 일을 잊어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잊어버릴 수 있는 사소한 상처는 용서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용서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는 유익하지만, 본질은 그 이상입니다.

 

용서의 진정한 정의는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려는 노력의 결단이며, 나에게 당한 것을 되갚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이는 복수하려는 충동을 스스로 억누르고, 그 죄의 짐을 스스로 떠맡는 행위입니다. C.S. 루이스의 말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잠깐 동안 잘못한 것에 대해 평생 용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용서가 필요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동시에 용서하기에 너무나도 무능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우리가 스스로 용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타인을 경멸하거나 되갚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누군가의 죄에 대해 경멸하거나 되갚을 자격이 있는 분은 오직 죄를 짓지 않으신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되갚거나 경멸하러 오시지 않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용서는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기뻐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오는 실망과 피곤함 때문에 관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리처드 원브란트 선교사가 "쇠덩어리는 그 풀무불에서 연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믿는다면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능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그 용서를 기뻐할 때만 가능합니다.


ⓒ 용서 1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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