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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urces] ESV 성경공부|마가복음|예수님의 갈릴리 밖에서의 사역

ESV 성경공부


5과: 예수님의 갈릴리 밖에서의 사역 (막 6:7~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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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

 

마가복음 6장부터 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여러 기적과 가르침 속에는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깊은 의미들이 숨어 있습니다.

 

1. 새로운 시작: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직접 동참하도록 세상에 보내십니다.

 

이 파송 사건에는 중요한 의미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1. 둘씩 보내신 이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혼자가 아닌 둘씩 짝지어 보내신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증인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어떤 일이든 두 명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만 그 증언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신명기 19:15). 둘째는 협력의 효과성 때문입니다. 혼자일 때보다 둘이 함께할 때 넘어지더라도 서로 붙들어 줄 수 있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전도서 4:9-10).

 

2. '새로운 출애굽'을 상징하는 복장

 

제자들의 복장은 단순했지만, 보는 이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여벌 옷이나 신발, 돈은 가지지 않은 모습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출애굽'의 밤(출애굽기 12:11)40년간의 광야 생활(신명기 8:4)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선포하는 복음이 바로 '새로운 출애굽', 즉 죄로부터의 해방을 알리는 소식임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지팡이와 가방을 메고 맨발로 다니던 견유학파 철학자들의 복장과는 달랐기에, 사람들이 제자들을 오해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3. 발의 먼지를 터는 행위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을을 떠날 때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땅을 부정하게 여겨, 그곳을 다녀온 뒤 유대 땅으로 들어올 때 신발의 먼지를 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행동을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 마을을 향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는 매우 강력하고 상징적인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가는 동안,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 예견된 순교: 세례 요한의 죽음

 

세례 요한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의로운 사람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겪게 되실 고난과 죽음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예고편과도 같습니다.

 

헤롯의 잘못을 지적한 요한 헤롯 왕은 자신의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이는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살면 역겨운 짓"이라고 명시한 율법(레위기 20:21)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왕의 권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죄를 담대하게 지적했습니다.

 

욕망이 부른 비극 헤롯의 생일잔치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성적인 뉘앙스가 짙은 춤을 추자, 헤롯은 그 춤을 보고 쾌감을 느껴 술기운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이 맹세는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헤로디아의 딸을 아내로 삼으려는 헤롯의 계산된 잔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왕위를 주려면 그녀가 왕비가 되어야 하므로, 맹세를 빌미로 그녀를 차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헤로디아가 개입하며 틀어집니다. 헤로디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딸을 통해 자신의 원수인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했고, 결국 헤롯은 자신의 맹세에 갇혀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예수님의 길을 보여주는 사건 세례 요한의 죽음은 헤롯의 잔꾀와 헤로디아의 교활함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이는 앞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실 일의 '전조'였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도 빌라도의 잔꾀와 대제사장의 교활함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임 당하실 것을 이 사건은 미리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이라는 어두운 사건 뒤에,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백성을 먹이시는 놀라운 기적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3. 유대인을 위한 기적: 오병이어와 물 위를 걷는 기적

 

예수님께서는 이제 자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두 가지 큰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기적들은 특히 유대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전달했습니다.

 

1. 오병이어: 광야의 만나를 재현하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기적은, 유대인들에게 과거 조상들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가득했습니다.

 

장소의 상징성: 기적이 일어난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40년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신 '만나'를 먹으며 살았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떡을 주신 것은, 당신이 바로 '새로운 출애굽'을 이끄는 지도자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모습의 상징성: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100, 50명씩 무리를 지어 앉게 하셨습니다. 이는 광야 시절, 이스라엘 공동체가 백부장, 오십부장 단위로 조직되었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결과의 상징성: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떡을 모으니 12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숫자 '12'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합니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바구니'는 유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종류의 바구니였습니다. 이 모든 상징은 이 기적이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즉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아적 표적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2. 물 위를 걷다: 신성(神性)을 드러내시다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힘겹게 노를 젓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이 기적은 단순한 초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적인 정체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나가려 하셨다' 라는 표현의 의미 성경은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을 '지나가려 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지나가신다'는 표현이 사용됩니다(욥기 9:11, 출애굽기 33:22). 마가는 이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지금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이 바로 구약의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나다(에고 에이미)' 라는 말씀의 의미 유령인 줄 알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고 에이미'는 단순히 "It's me"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실 때 사용하신 히브리어 '에흐예'("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4)를 번역한 표현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이 한마디로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직접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놀라운 기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신 예수님은, 이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전통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4. 사람의 전통이냐, 하나님의 계명이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형식보다 마음의 중심이 훨씬 중요함을 가르치십니다.

 

1. 정결 논쟁: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 논쟁의 핵심은 '참된 정결'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주장: 본래 제사장에게만 적용되던 정결 규정(레위기 22:4-6)을 모든 유대인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전체가 '제사장 나라'(출애굽기 19:6)가 되어야 한다는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손을 씻는 행위는 거룩함을 지키는 중요한 전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마음에서 비롯된 악한 생각, 탐욕, 비방, 교만 등)이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외적인 정결례보다 내면의 도덕적, 마음의 정결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하다는 핵심적인 가르침입니다.

 

2. 고르반 전통: 하나님의 계명을 피하는 꼼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위선을 '고르반'이라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비판하셨습니다.

 

'고르반'의 정의: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라고 서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고르반으로 선언된 물건은 다른 사람이 손댈 수 없게 하는 효력이 있었습니다.

 

악용 사례: 일부 사람들은 이 전통을 악용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재산을 "이것은 고르반입니다"라고 선언해 버림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교묘하게 피하는 꼼수로 사용한 것입니다. 심지어 이 전통의 위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원한 사람이 벌금(: 남자 50세겔)을 내면 그 물건을 다시 찾아올 수도 있었기에, 이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피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조작 가능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핵심 비판: 예수님께서는 이 사례를 통해 바리새인들이 사람이 만든 전통을 소중히 여기느라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다는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닫힌 전통을 비판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이제 그 경계를 넘어 이방인에게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5. 이방인을 향한 구원: 칠병이어 기적

 

지금까지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구원의 문이 이방인에게도 활짝 열려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1. 수로보니게 여인: 부스러기 은혜를 구한 믿음

 

한 이방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차갑게 말씀하십니다. 이 대화 속에는 놀라운 지혜와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여인의 지혜로운 응답: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합니다. 이는 "자녀(유대인)가 먼저 먹는 것이 맞지만, 개와 같은 저(이방인)에게도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는 있지 않습니까?"라는 겸손하면서도 지혜로운 응답이었습니다. 특히 구약 율법(레위기 19)에 따르면 밭에서 떨어진 이삭, '부스러기'는 가난한 자와 이방인의 몫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방인인 자신에게도 허락된 은혜의 권리가 있음을 지혜롭게 주장한 것입니다.

 

믿음을 시험하고 이끄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첫 대답은 여인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격적인 믿음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우선순위(자녀가 먼저)를 분명히 하시면서도, 끈질긴 믿음으로 나아오는 이방인에게도 '부스러기 은혜'가 있음을 인정하시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2. 칠병이어: 이방인을 위한 만나 잔치

 

수로보니게 여인 사건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떡 일곱 개로 4천 명을 먹이시는 '칠병이어'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기적은 오병이어와 비슷해 보이지만, 대상을 이방인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구분 · 오병이어 (유대인을 위한 기적)  ·  칠병이어 (이방인을 위한 기적)

장소
유대인 지역 (광야)
이방인 지역 (데가볼리)
대상
주로 유대인
상당수의 이방인 포함 ("멀리서 온 사람들")
결과
12 바구니가 남음 (이스라엘 12지파 상징)
7 광주리가 남음 (가나안 7족속, 즉 이방인 상징)

 

 

오병이어가 유대인을 위한 '만나 잔치'였다면, 칠병이어는 '이방인을 위한 만나 잔치'였습니다.

 

특히 오병이어에서 남은 '12 바구니'가 유대인들이 쓰던 종류의 바구니였던 반면, 칠병이어에서 남은 '7 광주리'는 이방인들이 흔히 사용하던 크고 튼튼한 바구니였습니다. 이러한 세심한 묘사를 통해 마가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하시는 온 세상의 메시아이심을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품는 메시아임을 보여주셨지만, 안타깝게도 제자들조차 그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6. 무지를 깨우치시다: 눈을 뜨게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주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닫힌 영적인 눈을 열어주기 시작하십니다.

 

1.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여기서 '누룩'은 빵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사람의 생각과 공동체 전체에 퍼지는 '잘못된 가르침'이나 '사상'을 비유합니다. 당시 아람어에서 '누룩'(하미라)'가르침'(아미라)의 발음이 비슷해서, 예수님께서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제자들이 더 잘 기억하도록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메시아 사상: 바리새인과 헤롯은 서로 정치적으로는 적대적이었지만, 메시아에 대한 생각만큼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로마 제국을 무력으로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군사적, 민족주의적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태도: 바리새인은 그런 강력한 메시아가 나타나면 따르려 했고, 헤롯은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존재이기에 그런 메시아가 나타나면 죽이려 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경고: 이 경고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 역시 이러한 잘못된 메시아 사상에 물들어, 이방인을 배척하고 예수님께 군사적인 표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가르침이었습니다.

 

2. 두 단계의 치유: 점진적으로 열리는 눈

 

예수님께서는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한 번에 고치시지 않고 두 단계에 걸쳐 치유하십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제자들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비유적인 행동이었습니다.

 

1단계 (희미하게 봄): 예수님께서 처음 안수하시자 맹인은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했지만, 그분이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사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제자들이 예수님을 어렴풋이는 알지만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한 영적 상태를 상징합니다.

 

2단계 (완전하게 봄): 예수님께서 다시 안수하시자 그 맹인은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됩니다. 이는 앞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분이 고난을 통해 죄를 사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마침내 온전히 깨닫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결론: 참된 제자의 길

 

마가복음 6-8장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군사적, 정치적 영웅을 뛰어넘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의 길은 세상이 말하는 화려한 성공이나 승리의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길은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때로는 오해와 고난이 찾아와도 인내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며, 고난 중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 삶을 맡겨야 합니다.


ⓒ ESV 성경공부 시리즈 : 마가복음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