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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월터 브루그만|하나님의 본성과 일하심

하나님, 이웃, 제국

Walter Brueggemann


1. 하나님의 본성과 일하심: 축소할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관계 맺음


관계: 정의, 은혜, 법의 인격적 토대

 

추상적 개념에서 역동적 '관계'로의 전환

 

성경이 제시하는 정의(Justice), 은혜(Grace), (Law)이라는 주제는 고립된 이론이나 고착된 교리가 아닙니다.

 

월터 브뤼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 개념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관계'라는 맥락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수적임을 역설합니다. 관계는 이러한 가치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재정의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관계는 결코 정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끝이 없고, 논쟁적이며, 진행 중이며,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위험하고 대화적인 과정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하늘에 고정된 '부동의 존재'나 추상적인 속성 속에 갇힌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과 위험한 거래를 이어가는 적극적인 '대화의 상대자'로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는 신앙에서 '확실성(Certainty)'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성에 매몰될 때,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선사하는 모든 '놀라움(Surprise)'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관계의 역동성을 이해했다면, 이제 이 관계를 지탱하는 다섯 가지 핵심 언어의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1. 관계의 핵심 언어: 호세아 2장에 나타난 다섯 가지 기둥

 

호세아 2장은 깨어진 관계의 회복 과정을 통해 언약적 관계를 지탱하는 다섯 가지 핵심 용어를 제시합니다. 이 용어들은 사적인 친밀감의 영역과 공적인 사회 경제적 질서를 하나의 의미론적 장 안에서 통합하며, 공적 현실을 비유하는 예술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핵심 용어 · 의미 및 성서적 맥락 · 관련 영역

공의 (Mishpat)
자원의 공평한 분배와 실행 가능한 사회적 질서
사회·경제적 정치 질서
의로움 (Tzedekah)
공동체 내에서의 바른 관계와 책임 이행
사회·경제적 정치 질서
변함없는 사랑 (Chesed)
언약에 근거하여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사랑
공공 기관을 지탱하는 내밀한 친밀감
신실함 (Emunah)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유지하는 태도
공공 기관을 지탱하는 내밀한 친밀감
자비 (Racham)
'자궁(Womb)'에서 유래한 모성애적(Mother love) 사랑
존재론적 보살핌과 회복

 

이 다섯 단어는 '언약적 관계성'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야훼 하나님이 깊은 상처와 분노의 여파 속에서도, 아무런 보증이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마음을 돌리는 '유턴(About-face, 유턴)'를 감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의 선택의지는 정절과 배신이라는 인간사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관계를 재건하는 결정적인 힘이 됩니다.

 

이 단어들이 관계의 청사진이라면, 실제 역사 속에서 이 관계가 깨지고 회복되는 과정은 출애굽기의 기록을 통해 더욱 선명해집니다.

 

2. 실패와 회복의 역동성: 출애굽기 34장의 언약 재건

 

출애굽기 34장은 '금송아지 사건'이라는 치명적인 관계의 파괴 이후, 언약이 어떻게 재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은 모세와 야훼 사이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이루어지며, 신의 성품이 가진 역설적인 특징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조건 없는 은혜의 선언: 야훼는 스스로를 '인자(Chesed)', '자비(Racham)', '은혜(Hanan, 은혜)'가 풍부한 분으로 선포합니다. 이는 실패한 관계를 새로게 하려는 신의 관대한 의지를 반영합니다.

 

관계의 모순적 특징: 본문은 "결코 죄인을 무죄로 만들지 않겠다"는 엄중한 선언과 "용서와 자비"의 약속을 동시에 제시합니다. 이 논리적 모순은 모든 깊은 관계가 필연적으로 안고 가는 모호함을 상징합니다.

 

설명 없는 회복: 야훼는 이전의 심판을 번복하고 열방이 본 적 없는 이적을 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러한 '설명이나 보증 없는 유턴'은 관계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은혜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깨진 언약의 회복이 개인과 민족의 역사라면, 모든 소망이 끊어진 절망의 순간에도 이 관계는 여전히 작동합니다.

 

3. 절망 속의 기억: 애가 3장이 보여주는 소망의 근거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극단적 고통을 다루는 예레미야 애가 3장은, 모든 소망이 사라진 지점에서 '기억'이 어떻게 새로운 미래를 재건하는 전략적 가치가 되는지 보여줍니다.

 

상실의 고백: 시인은 건강, 영광, 미래에 대한 희망이 모두 소멸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영혼이 사별한 듯한 이 지점에서 시인은 철저한 절망을 경험합니다.

 

기억의 거부와 소환: 21절에서 시인은 의도적으로 기억을 소환합니다. 이스라엘은 절망할지언정 과거를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을 거부합니다.

 

소망의 근거: 야훼의 인자(Chesed)와 자비가 무궁하며, 그 신실함(Emunah)이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을 기억해낼 때 비로소 '긴급한 희망'이 싹틉니다.

 

이 본문은 관계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울지라도, 신의 신실함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소망은 언제든 재건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소망의 기억이 회복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늘과 땅이 입 맞추는 평화의 상태를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4. 관계의 완성: 시편 85편의 샬롬(Shalom)과 창조적 번영

 

시편 85편은 관계의 회복이 단순히 내면의 위안에 그치지 않고, 공적 현실과 자연 세계의 물질적 번영으로 확장됨을 보여줍니다.

 

입 맞추는 가치들: "사랑과 신실함이 만나고 의와 화평(샬롬)이 입 맞춘다"는 표현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를 묘사합니다.

 

물질적 샬롬: 관계가 순조로울 때 야훼께서는 '땅의 소출'을 주십니다. 이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질서가 재연되는 것입니다. 성경적 충실함은 추상적인 종교적 마술이 아니라 도시와 들판, 광주리와 반죽 그릇에 복이 깃드는 물질적 실제입니다.

 

환경적 시사점: 관계가 어긋날 때 땅이 슬퍼하고 피조물이 쪼그라든다는 성경적 상상력은, 오늘날 이익만을 위해 창조물을 소진하는 기업식 농업과 환경 위기에 강력한 경고를 던집니다.

 

이러한 관계의 결과물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가진 양 당사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합니다.

 

5. 주체성(Agency)의 발현: 신과 인간의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과 인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적극적인 주체성(Agency)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들과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신의 주체성: 하나님은 고정된 속성에 갇힌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혼돈에 한계를 설정하고, 인간의 탄원에 응답하며, 변혁적 능력을 발휘하는 파트너로 행동하십니다.

 

인간의 주체성: "사회와 같은 것은 없다"며 인간의 공동체적 책임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적 관점과 달리, 성경는 인간에게 공적 과정에 참여할 책임을 부여합니다.

 

사회적 적용: 우리는 사회적 혼돈 앞에서, 공동선을 위해 한계를 설정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적 행위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물이 있는 그대로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음을 믿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바로 신앙 공동체의 사명입니다.

 

주체성을 가진 주체들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는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자'를 향한 개방성입니다.

 

6. 타자를 향한 개방성: 우리 안의 충돌과 환대

 

성경적 관계성은 자아의 안녕을 넘어 과부, 고아, 이민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 '타자'에게로 확장될 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타자의 유익: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자기 이익만을 구한다면, 성경적 관계성은 타자의 유익을 구합니다. 신이 자신의 안녕에만 몰두하지 않고 인간의 안녕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듯, 우리도 타자를 위해 상호작용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안의 충돌(The Clash Within): 진정한 갈등은 '서구 vs 이슬람'과 같은 외부의 충돌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자를 '포용하려는 마음''배척하려는 마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리 내면의 투쟁입니다.

 

환대의 사명: 초기 기독교의 핵심은 세례 공동체를 이방인에게 개방하는 담대함에 있었습니다. 타자의 안녕을 구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넘어서는 성숙한 관계의 증거가 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관계의 모든 역동성은 결국 우리를 안전지대 밖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안내합니다.

 

결론: 위험한 자유와 새로운 가능성

 

성경적 삶은 고착화된 교리나 질서 속에 안주하며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타자 앞에 서는 '위험한 자유'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이 관계는 결코 최종적으로 해결되거나 종료되지 않으며 항상 진행 중입니다. 그것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끊임없는 협상과 관계의 거래에 몸을 던질 때, 우리 사회에는 기존의 질서를 능가하는 지속적인 '새로움'이 탄생합니다. 이 역동적인 관계의 현장에서 정의와 은혜와 법은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실제가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rlVs58s5nk


ⓒ 하나님, 이웃, 제국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