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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ages

[Message] 위대한 의사

2025, 0309

위대한 의사

Message by 이재훈

 

Scripture: 누가복음 5장 27-32 Topic: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누가복음 5장에 기록된 세리 레위(마태)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깊은 상처와 공허함을 치유하시는 '위대한 의사'가 되시는지 조명하고자 합니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눈이 머무는 곳은 나의 슬픔과 고통,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나의 상처와 아픔"이라는 찬양 가사처럼, 예수님의 시선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영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앉아 돈을 세고 있던 한 남자, 레위에게서 시작됩니다.


세리 레위 : 연합을 잃고 공허에 빠진 삶

 

레위라는 이름은 '연합하다'는 아름다운 뜻을 지녔지만, 그의 직업인 세리(세금 징수원)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가장 증오받고 배척받는 존재였습니다. 세리는 로마 정부에 충성하며 동족의 세금을 거두었고, 정해진 세금보다 더 많이 징수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되었는데, 이는 단순히 윤리적 잘못을 넘어 하나님께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하는 심각한 개념이었습니다.

레위가 처음부터 세리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당시 그 지역의 엘리트였으며, 외국어와 세법에 능통했고, 여느 유대인처럼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열심도 지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400년간 계속된 이방인의 압제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레위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봤자 소용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신앙의 길을 걷다 고난 앞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을 신경 쓰지 않고 세상의 방식에 순응하려는 유혹과도 같습니다. 레위는 현실에 빠르게 적응하고 생존하는 길을 택했고, 그 결과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는 그가 큰 잔치를 베풀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성공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를 떠났고, 그가 속해 있던 신앙 공동체마저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돈을 개수하며 허무하고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만족은 마치 탄산음료와 같아 잠시 시원하지만 곧 더 큰 갈증을 유발하며,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킬수록 기대치는 높아져 결국 영적인 배고픔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찾아오심 : 죄인에게 내민 용서의 손길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중에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로마서 828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과 눈물을 마침내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예수님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으로 고치심으로써 당시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죄 용서는 오직 성전에서 제사장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픈 이가 있는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죄를 용서하심으로 치유를 베푸셨습니다. 이는 400년간 이스라엘을 떠나 계셨던 하나님께서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돌아오셨다는 혁명적인 의미를 지녔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기적을 행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추종을 받던 예수님께서 그 발걸음을 향한 곳은 바로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던 세리 레위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에게 단 한마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성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기적과 하나님 나라의 소문을 들으며 희망을 품었겠지만, 자신이 죄인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을 죄인으로 여길 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레위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 용서의 손길을 통해 레위는 세상적인 성공으로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함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치유 :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삶

우리 또한 본질적으로 죄인이기에 레위와 닮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칭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고 싶어 하는 죄성이 존재합니다.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쉽게 하나님을 의심하고 멀어지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셔서 용서와 은혜, 위로의 손길을 내미시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붙잡히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패턴을 죽을 때까지 반복할지도 모릅니다. 레위가 예수님을 "따랐다(미완료형)"는 성경의 표현은 그가 때론 넘어졌다가 다시 따르기를 반복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세상에서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랐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레위가 앉아있던 절망과 안일함의 자리에서 벗어나, 안정된 체계를 포기하고 새로운 가치인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의지적 결단이었습니다. 비록 이 결단이 항상 쉽지는 않고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옛날처럼 아예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회개와 다시 일어섬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우리에게 먼저 손 내미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는 데 달려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1-3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사명이 바로 죄인을 고치고 일으켜 세우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치유를 통한 변화 : 마태복음의 저자가 되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서 배척받던 세리 레위에게 다가가셨고, "나를 따르라"는 한마디를 통해 영적으로 죽어있던 그를 살리시고 치유하셨습니다. 레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마태입니다. 그는 훗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고 마태복음을 기록했으며,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죄인을 치유하고 살리셔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인 성경을 기록하는 '큰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위대한 의사,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레위처럼 절망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에도,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치료하시고 결국에는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 만들어 나가실 것입니다. 이 치유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걸음씩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 위대한 의사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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