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성경공부
2. 의로움의 갈망(1:18-2:29)
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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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비추는 거울
말씀 앞에 나를 세우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가르치고 위로하며 때로는 우리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복음의 능력 안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여정을 시작해 봅시다.
1. 우리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이유 (로마서 1장)
1. 하나님의 진노와 진리를 외면하는 우리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들으면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바울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우리가 왜 복음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먼저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음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놀라운 능력인지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겁주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한 필수적인 기초 작업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기쁜 소식인 이유는(1:17), 바로 그 복음이 없다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1:18)고 말하며, 진노에 대한 이해가 복음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필수적인 배경임을 보여줍니다.
그 진노는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를 향합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을 어기는 모든 삶의 방식을 향합니다.
혹자는 '하나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압니다(롬 1:21). 창조 세계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며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1:20).
진짜 문제는 무지(ignorance)가 아니라, 이미 아는 진리를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외면하는 '자기 억압'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 진리를 모른 척하며 살아갑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하나님의 진노'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먼저 떠오릅니까? 복음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이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창조 세계(자연, 예술, 인간 관계 등)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나 성품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그 순간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 혹시 내 삶에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까?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처럼 진리를 외면한 마음은 비어있는 채로 머물지 않고,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향하게 됩니다.
2. 비어있는 보좌: 무엇을 숭배하며 사는가
우상숭배는 단순히 오래된 신전에서 조각상에 절하는 고대의 종교 행위가 아닙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마땅히 있어야 할 마음의 중심에서 밀어내고, 그 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는 모든 시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경향성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만이 앉으셔야 할 우리 마음의 보좌를 놓고 경쟁하는 현대판 우상들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기를 거부할 때(롬 1:21), 그 마음은 필연적으로 다른 대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바로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롬 1:25).
왜 그럴까요?
우리는 본래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채우고 가장 근원적인 두려움을 잠재워 줄 예배의 대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면, 그 빈자리를 다른 피조물이 차지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행위를 일종의 '표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좋은 것들을 마치 내 것인 양 취하여,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창조의 질서를 뒤엎을 때, 우리의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지게 됩니다(롬 1:21).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하나님 대신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가장 많이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 성공, 안정, 인정, 관계, 쾌락 등)
• 당신의 삶에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이 당신의 결정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숭배할 때,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갖도록 내버려두시는 방식으로 진노를 나타내십니다.
3. 가장 큰 비극: 우상을 손에 쥐게 될 때
우리의 우상숭배적인 욕망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은 매우 역설적으로 들립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을 내리시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필사적으로 원하는 우상을 우리 손에 쥐여주시는 '내버려 두심'의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거부한 사람들을 "그들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사"라고 말씀하십니다(롬 1:24, 26, 28). 여기서 '정욕'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피투미아'는 문자적으로 '과도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본래 선한 것들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아 신처럼 숭배하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신들이 우리를 벌주고 싶을 때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처럼, 우리가 우상으로 삼은 것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형벌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아닌 더 큰 공허와 파멸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길의 끝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바울은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롬 1:25)라고 선포합니다. 유일한 탈출구는 진리 외면을 멈추고, 다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찬양하는 데 있습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내 삶에서 '좋은 것'을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 과도하게 욕망하고 있는 영역은 없습니까? (예: 건강한 관계, 직업적 성취, 자녀의 성공 등)
• 과거에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었지만, 결국 그것이 나에게 만족이 아닌 더 큰 공허함이나 문제를 가져왔던 경험이 있습니까?
•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찬양하는 것"이 내 삶의 모든 우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창조주와의 수직적 관계가 무너지면, 사람들 사이의 수평적 관계 역시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논증에서 가장 천재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쾌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 보여준 그는, 이제 그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또 다른 그룹에게로 시선을 돌립니다.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종교와 도덕으로 달려가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길이 훨씬 더 교묘하고 위험할 수 있음을 폭로하며, 인간의 모든 자기 의의 탈출구를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2부: 감춰진 문제: 종교인의 우상숭배 (로마서 2장)
1. 판단하는 마음속에 숨겨진 교만
로마서 1장이 세상의 죄와 비종교인의 우상숭배를 지적했다면, 2장은 그 시선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에게로 옮겨옵니다.
이 부분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우리 모두를 향한 날카로운 자기 성찰의 초대장입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교묘하게 숨어 있는 가장 위험한 우상 중 하나인 '자기 의(self-righteousness)'를 폭로합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판단 뒤에 숨겨진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며 '역시 너는 나보다 못하구나. 내가 훨씬 나은 사람이지'라고 생각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온갖 이유를 대며 변명하지만, 다른 사람의 죄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가혹하게 정죄합니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빗대어 보면, 로마서 1장의 사람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동생'과 같고, 2장의 사람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동생을 판단한 '형'과 같습니다.
비유의 핵심은, 두 아들 모두 길을 잃었고 아버지의 품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당신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드나요? 긍휼한 마음이 드나요, 아니면 은근한 우월감을 느끼나요?
•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경험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이 바로 내가 복음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증거임을 인정하십니까? 이 교만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자기 의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선한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으려 하지만, 바울은 행위의 역할을 다르게 설명합니다.
2. 행위: 구원의 근거가 아닌 증거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롬 2:6)라는 바울의 말은 자칫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핵심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표면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의 행동이 갖는 참된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선한 행위는 구원을 얻기 위한 근거(basis)가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는 믿음을 소유했음를 보여주는 증거(evidence)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마음이 변화된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합니다.
한 부류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닮고 그분께 영광 돌리기 위해 선을 행합니다.
반면 다른 부류는 "당을 짓는(self-seeking)"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중심적인 동기로 움직이며 오직 자신의 이익과 영광을 추구합니다.
결국 우리의 행위는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당신이 선한 일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주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닮고 싶어서인가요?
• 당신의 삶이 구원받은 믿음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습니까? 당신의 일상적인 행동과 태도에서 어떤 열매가 나타나고 있나요?
• '내 힘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을 완벽하게 따를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주시는 의가 필요하다'는 고백이 당신에게 얼마나 실제적인가요?
결국, 우리의 행위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는 종교적 정체성조차 우리를 구원할 수 없으며, 오히려 또 다른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3. 종교심이 우상이 될 때
이 마지막 부분에서 바울은 가장 교묘하고 강력한 형태의 우상숭배를 다룹니다.
바로 자신의 종교적 신분, 성경 지식, 도덕적 행위를 구원의 근거로 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내면의 실재인지, 아니면 겉모습만 그럴듯한 텅 빈 껍데기인지를 점검하라는 준엄한 요청입니다.
바울은 당시 유대인들을 향해 말하지만, 우리는 '유대인'이라는 단어를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어 읽어야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에 의지하고, 성경을 안다는 사실을 자랑하며,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내세우는 태도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롬 2:17-19).
이것은 '죽은 정통주의(dead orthodoxy)'의 모습입니다. 교리적으로는 모두 옳게 동의하지만, 그 진리가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입니다.
바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표면적 육신의 할례"(세례, 교인 등록 등 외적인 표지)가 아니라, "성령에 의한 마음의 할례"(내면의 근본적인 변화)입니다(롬 2:28-29). 이 '마음의 할례'라는 표현 속에 로마서 1-2장 전체를 관통하는 복음의 놀라운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에서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맺은 표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언약을 깨뜨릴 경우 받게 될 저주, 즉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잘려 나가는’ 심판을 상징하는 두려운 표식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1장과 2장에서 증명했듯이, 비종교인과 종교인 모두 언약을 깨뜨렸기에 우리 모두는 이 '잘려 나가는' 저주 아래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골로새서 2장 11절은 우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심장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잘려 나가셨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 언약의 저주를 온몸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우리는 저주의 표가 아닌 구원의 표로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이 이미 그분 안에서 모두 이루어졌음을 확증하는 은혜의 표식입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 당신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구원의 보증수표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믿음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나요, 아니면 이론에만 머물러 있나요?
• 성경을 읽고 아는 것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를 자랑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을 먼저 비추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고 있습니까?
• '마음의 할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의무감이 아닌 사랑으로 하나님을 따르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 나의 모든 종교적인 노력과 선행에도 불구하고, 오직 십자가에서 언약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임을 고백하십니까?
결론: 오직 복음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로마서 1장과 2장을 통해 바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명확합니다.
비종교적이고 방탕한 사람이든,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든, 자기 쾌락을 좇는 사람이든, 자기 의를 쌓는 사람이든,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상태에 있습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의(righteousness)'가 절실하게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종교적 열심, 도덕적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복음 안에 있습니다.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함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음을 계속해서 기억합시다.
우리의 정체성과 안전함, 그리고 삶의 변화가 오직 복음의 능력에서만 나온다는 진리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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