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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urces] 로마서 성경공부|의롭다 하심을 받은 유익들

로마서 성경공부


5. 의롭다 하심을 받은 유익들 (로마서 5장)

하나님과 화평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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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기쁨과 소망의 발견

 

1. 의롭다 여김 받은 자의 넘치는 유익 (5:1-11)

 

1. 흔들리지 않는 세 가지 기반: 화평, 은혜, 소망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신자의 삶은 결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을 시작하며, 구원받은 우리가 즉시 누리게 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유익을 제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떠받치는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 됩니다. 이 기반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폭풍우를 새로운 관점으로 마주할 힘을 얻게 됩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의 세 가지 유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적대 관계, 즉 영적 전쟁이 완전히 종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우리는 죄를 통해 우리 삶과 세상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역시 그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요구하시기에, 두 세력이 한 영토를 두고 다투는 곳에 전쟁은 필연적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진노를 거두셨고, 그 전쟁은 끝났으며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은혜에 들어감: 이것은 마치 국가의 최고 지도자와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특별한 통행증을 얻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 앞에 언제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특별한 신분과 특권을 얻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적대감이 사라진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 이것은 막연한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엘피스)희망으로 채워진 확신을 의미합니다. 이 소망은 앞선 두 가지 유익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그분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분과 대면하기를 갈망하게 되며 장차 올 천국의 영광에 대한 기대로 확신에 차 전율하게 됩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는 것은 당신의 일상에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나요? 과거 하나님과 적대적이었던 상태가 끝났다는 사실이 현재 당신의 기도 생활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은혜의 자리에 들어섰다'는 것을 언제 가장 실감하나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와 친밀함을 경험했던 순간을 떠올려보고, 그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묵상해 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소망'이 당신의 미래 계획이나 현재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이 확신에 찬 소망이 오늘의 어려움을 견디는 데 어떤 힘이 됩니까?

 

이처럼 견고한 기반 위에 서 있을 때, 우리의 삶에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환난'은 더 이상 우리를 무너뜨리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은혜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환난을 기쁨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요?

 

2. 환난을 기쁨으로 통과하는 비결

 

'환난 중에 즐거워한다'는 바울의 선언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며,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신앙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통 자체를 즐기는 금욕주의자가 아니라, 환난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확신이 더욱 커질 것을 알기에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환난이 신자의 삶에서 일으키는 놀라운 연쇄 반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환난 인내 연단 소망

 

환난은 우리를 인내하게 합니다. 여기서 인내란 한마음을 뜻하며, 환난은 덜 중요하고 사라질 것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 진정으로 중요하고 영원한 것에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인내는 연단을 이룹니다. 연단이란 시험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힘든 경험을 겪고 난 후에 얻게 되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성숙한 인격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연단의 과정은 결국 우리의 소망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환난은 우리를 세상의 헛된 소망에서 돌이켜,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되는 참된 소망과 확신으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느냐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사람은 환난 속에서 불안해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신이 겪은 힘든 삶을 근거로 하나님의 인정과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끼며, 고난을 또 다른 자기 의의 재료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환난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깊이 의지하며 가까이 나아갑니다. 이처럼 환난은 우리가 진정으로 신뢰하는 대상이 우리 자신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를 드러내는 시금석과도 같습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을 떠올려 보세요. 그 환난은 당신의 시선을 덜 중요한 것들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일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었나요,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했나요?

 

과거의 힘든 경험을 통해 인내하고, 그 결과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연단'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어떻게 더 깊어졌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환난을 대할 때, '하나님이 나를 벌하신다'는 두려움과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나를 더 깊은 은혜로 이끄신다'는 믿음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기우나요? 당신의 반응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의 진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확신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감정이나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견고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3. 내면과 외면을 채우는 확신의 근거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의 기복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증거, 즉 내적인 증거와 외적인 증거를 모두 제시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할 때 우리의 소망은 부끄러움으로 끝나지 않는 견고한 실체가 됩니다.

 

내적 확신: 성령의 증거 (5)

 

우리의 소망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심으로써,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주관적이고도 강렬하게 경험하게 하시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외적 확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6-8)

 

우리의 감정이나 삶의 환경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변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진리입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 죽는 것도 드문 일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원수 되었을 때, 연약하고 경건하지 않았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감정이나 상황과 무관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궁극적인 증거입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었다'고 느낀 최근의 경험은 무엇인가요? 성령께서 주시는 내적인 확신을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하고 있습니까?

 

감정적으로 흔들리거나 의심이 들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객관적 사실을 붙잡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이 진리가 당신에게 어떤 위로와 힘을 줍니까?

 

당신은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다음의 여섯 가지 기쁨의 사인들을 하나씩 점검하며 자신의 신앙 상태를 진단해 보세요.

 

1. 당신의 마음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에 깊이 만족합니까?

2. 당신의 과거를 오직 그 교리의 관점에서만 바라봅니까?

3. 자신의 성격적 결함(두려움, 절제 부족 등)을 발견할 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4. 양심이 당신을 고소할 때 변명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합니까?

5. 비판에 직면했을 때, "나는 그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악한 죄인이다"라고 인정하며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까?

6. 우리의 친구 되신 주님께 갈 것을 알기에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이처럼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서서, 환난조차도 기쁨으로 통과하며, 내면과 외면을 채우는 확신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모든 놀라운 구원의 유익들은 과연 어떤 원리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까요?

 

2. 인류의 두 대표: 아담과 그리스도 (5:12-21)

 

1. 이해의 열쇠, 언약적 대표성

 

한 사람의 행동이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개념은 모든 것을 개인의 선택과 책임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낯설고 불편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언약적 대표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의 타락과 구원이라는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언약적 대표성이란, 한 대표자의 행위와 그 결과가 그에게 속한 모든 구성원에게 정당하게 전가되는 원리를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노동조합 대표: 노조 대표가 회사와 맺은 협약은 모든 조합원의 임금과 근로 조건을 결정합니다.

 

선출된 정부 대표: 정부가 다른 나라에 전쟁을 선포하면, 내가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전쟁 중인 국가의 국민이 됩니다.

 

변호사: 법정에서 변호사가 하는 변론의 결과는 피고인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나는 아담을 나의 대표로 선택한 적이 없는데 왜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반론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한 최선의 대표자로 아담을 창조하셨으며, 그는 우리의 정당한 언약적 대표였다고 선언합니다. 따라서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고, 그의 유죄 판결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원리가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에 담긴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만약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만으로 자신을 대표해야 한다면, 그 누구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모두 정죄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3:20). 우리를 아담 안에서 정죄받게 한 바로 그 '대표성의 원리',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이 대표성의 원리는 한편으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에게 절망을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비교할 수 없는 희망의 문을 열어줍니다. 이제 아담과 그리스도, 두 대표가 가져온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2. 비교할 수 없는 두 결과: 죄와 은혜

 

바울은 아담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행위를 비교하며, 그리스도의 은혜가 단순히 아담의 죄를 상쇄하는 수준을 넘어, 그 능력과 결과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압도적이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지만, 그리스도의 은사는 아담의 범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구분 (Category)
첫째 아담 (First Adam)
둘째 아담, 그리스도 (Second Adam, Christ)
행위의 동기/성격
범죄, 불순종
은사, 의로운 행위, 순종
행위의 결과
죽음, 정죄, 죄의 노예
생명, 의롭다 함,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행위의 능력
사망이 왕 노릇 함
"더욱" 넘치는 은혜가 왕 노릇 함

 

아담의 한 번의 불순종은 모든 인류에게 죽음과 정죄를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은 그 모든 것을 뒤엎고도 남을 만큼 강력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가장 심오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신학자 그레샴 메이첸의 설명처럼, 그리스도의 사역은 두 가지 위대한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그분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소극적 순종). 둘째, 그분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법을 완벽하게 지키심으로써 우리가 실패한 순종의 시험을 대신 통과하셨습니다(적극적 순종).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죄의 값을 치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순종의 시험 자체를 통과하셨으므로, 이제 우리의 시험도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덧입어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하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묵상 질문 (Reflection Point):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이 당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나요? 당신의 가장 큰 실패나 죄악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했던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 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죄의 노예로 살던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 당신의 삶에서 어떤 실질적인 자유와 권세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순종의 시험을 통과하셨으므로 '우리의 시험도 끝났다'는 진리를 묵상해 보세요. 이 사실이 죄책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당신을 어떻게 자유롭게 합니까?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두 대표를 통해 드러난 이 놀라운 복음의 원리는, 우리에게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동시에 가르쳐 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굳건히 서야 할 복음의 두 기둥입니다.

 

결론: 복음의 두 기둥 위에 서기

 

로마서 5장은 우리에게 복음이 담고 있는 두 가지 핵심 진리를 균형 있게 붙잡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두 진리는 건강한 신앙의 두 기둥과도 같습니다.

 

첫째,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죄인이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하심 앞에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철저히 타락했으며,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그분께 나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잊으면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자유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둘째,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고 용납되었다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분의 자비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완전히 받아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완전한 사랑과 수용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진리를 잊으면 우리는 자신의 행위로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이 두 진리 사이의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교만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으며 오직 은혜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 팀 켈러의 로마서 성경공부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