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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s

[Reports] 리처드 개핀|십자가의 유익

십자가의 유익

Richard B. Gaffin, Jr.


THE USEFULNESS OF THE CROSS


종말론적 현실로서의 그리스도인 고난

 

칼빈이 말한 '십자가의 유익'

 

베드로전서 4:12-13에 대한 주석에서 존 칼빈은 '십자가의 유익'을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시련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리처드 개핀은 두 번째 측면, 즉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fellowship in the sufferings of Christ)'이 신약의 종말론적 문맥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합니다.

 

1. 종말론의 확장: '이미' 시작된 마지막 날

 

과거의 전통적 종말론이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일어날 '마지막 일들'에 국한되었다면, 현대 성경 신학의 합의는 종말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 실현된 종말: 신약은 현시대를 "때가 찬 때"(갈 4:4), "이 마지막 날"(히 1:2)로 규정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종말에 있을 대수확의 '첫 열매'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살아났으며, 종말론적 생명을 현재 경험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2. 고난: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는 통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미 시작되었다면, 왜 신자는 여전히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

 

일부에서는 이를 '신학적 승리주의'로 오해하여 고난의 실제를 간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이 부활의 권능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 역설적 일치: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과 "예수의 생명"은 분리된 영역이 아닙니다. 예수의 생명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의 '죽을 육체'와 '약함'을 통해 나타납니다.
  • 빌립보서 3:10의 원리: 바울은 부활의 권능을 안다는 것을 곧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고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과 동일시합니다. 부활의 에너지는 우리를 안락함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의 형상으로 빚어가는(conforming) 동력이 됩니다. 즉, 이 세상에서 부활의 권능이 나타나는 표지는 바로 '십자가'입니다.

 

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대한 오해와 진실 (1:24)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을 때,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 선교적 연대: 그리스도의 아토먼트(Atonement, 속죄)는 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한 제사입니다. 하지만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몸 된 교회 사이의 신비한 연합으로 인해, 교회가 복음 증거를 위해 겪는 고난은 그리스도 자신의 고난으로 간주됩니다.
  • 필연적 과정: 하나님은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교회가 겪는 고난을 복음 전파와 구속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정해두셨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분명한 '주어짐(indicative)'이자 상태입니다.

 

4. 고난의 보편성: 피조물과 함께하는 신음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단순히 종교적 박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피조물의 굴복: 죄 아래 있는 전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여 신음하고 있듯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신자들도 이 썩어짐의 종노릇 하는 세상 속에서 함께 신음합니다.
  • 일상 속의 십자가: 타락한 세상에서 겪는 질병, 사탄의 유혹, 일상의 고통을 그리스도를 위해 인내하며 그분의 봉사 안에서 견뎌내는 모든 과정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제'입니다.

 

결론: 승리의 종말론은 고난의 종말론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우리를 위한(for us)" 그리스도의 십자가(대속)는 잘 이해해 왔으나, "그분과 함께하는(with him)" 고난의 연합에 대해서는 간과해 온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종말론은 '고난을 통한 승리'를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교회에 나타나는 부활의 영광은 언제나 고난이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따를 때에만, 교회는 유토피아적 낙관주의나 현실 도피적 종말론에 빠지지 않고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실존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THE USEFULNESS OF THE CROS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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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USEFULNESS OF THE CROSS (출처 reformedfor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