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화해, 그리고 정의
Miroslav Volf
FORGIVENESS, RECONCILIATION, AND JUSTICE
: A Christian Contribution to a More Peaceful Social Environments
평화로운 사회 환경을 위한 기독교적 기여
현대 사회의 종교 회생과 폭력의 문제
사회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종교는 사사화(privatization)되어 사라지지 않고 현대 국제 정치의 핵심 행위자로 재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인식 속에서 종교는 종종 폭력과 테러의 동력으로 비춰집니다.
미로슬라프 볼프는 기독교 신앙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며, 오히려 기독교 신앙이 평화로운 사회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임을 논증합니다. 미로슬라프 볼프는 종교적 폭력에 대한 해결책이 '더 적은 종교'가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 내용을 실천하는 '더 깊은(thick) 종교'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1. 종교는 본성적으로 폭력적인가?
일부 학자들은 종교의 본성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을 오해한 것입니다.
- '정복'으로서의 제의: 모리스 블로흐(Maurice Bloch)는 종교적 제의가 '초월'에 의한 '현세'의 정복을 수반하므로 팽창주의적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초월에 의한 현세의 정복은 초월적 평화가 현세의 폭력을 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 일신교의 배타성: 레지나 슈바르츠(Regina Schwartz)는 일신교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배타성을 띠어 폭력을 낳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일신교는 삼위일체적 일신교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며 사랑의 친교를 이룹니다. 이 교리는 배타적 정체성이 아닌,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포용의 토대가 됩니다.
2. 화해에 대한 두 가지 오해
갈등 상황에서 화해와 정의를 연결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 잘못된 길이 있습니다.
- 값싼 화해 (Cheap Reconciliation): 정의를 구현하기 전에 화해를 구걸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압제자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며, 불의를 묵인하는 죄악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반드시 정의를 그 구성 요소로 포함해야 합니다.
- 선 정의, 후 화해 (First Justice, Then Reconciliation): 정의가 완전히 실현된 후에야 화해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엄격하고 완전한 정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모든 정의의 추구는 부분적인 불의를 포함하며 새로운 불의를 낳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의 집행만으로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관계의 치유와 친교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3. 대안: '포용하려는 의지'의 우선성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 사건은 정의와 화해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 포용하려는 의지의 우선성: 기독교인은 상대방의 잘못을 판단하기에 앞서, 심지어 가해자일지라도 그를 포용하려는 의지(Will to embrace)를 먼저 가져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사랑에 근거한 근본적인 의무입니다.
- 정의를 향한 전제 조건: 포용하려는 의지는 불의를 눈감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포용하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적의 주장에서 정당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며, 진정한 정의를 향한 대화가 가능해집니다.
- 화해의 지평으로서의 정의: 정의의 투쟁은 단순히 응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포용)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의는 화해라는 더 큰 목표 아래 종속될 때 비로소 평화의 도구가 됩니다.
4. 용서: 정의를 긍정하며 초월하기
용서는 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설 때 일어납니다.
-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정죄해야 합니다(정의의 긍정).
- 그다음, 그 잘못에 대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합니다(정의의 초월).
- 이러한 용서는 가해자로 하여금 자기 정당화의 굴레를 벗고 스스로 잘못을 깨닫게 하는 강력한 변화의 힘을 가집니다.
결론: 십자가 신학의 실천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불의를 묵인하지 않으면서도 인류를 화해시키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 서사는 단순히 개인의 내면적 평안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사회를 재도덕화하고 평화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정치적 자원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심오한 내용에 더 깊이 헌신할 때, 기독교인은 갈등의 현장에서 단순한 중재자를 넘어 '평화를 위한 전사(militants for peace)'로 거듭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Repor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Reports] 그랜트 오즈번|히브리서의 그리스도 (0) | 2026.03.03 |
|---|---|
| [Reports] 스캇 마네치|존 칼빈의 그리스도인의 삶 (0) | 2026.03.01 |
| [Reports] 리처드 개핀|십자가의 유익 (0) | 2026.02.28 |
| [Reports]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전도서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0) | 2026.02.28 |
| [Reports] 시드니 그레이다누스|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기 (0) | 2026.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