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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urces] 복음 중심 공동체|공동체를 빚어내는 복음

복음 중심 공동체


3과 공동체를 빚어내는 복음

읽을거리 공동체의 장애물과 복음의 자유
활동 공동체 기도와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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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빚어내는 공동체: 세상을 바꾸는 관계의 비밀

 

서론: 우리가 속한 공동체, 무엇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공동체는 우리 삶의 근간을 이룹니다.

 

우리는 가족, 직장, 친구, 그리고 신앙 공동체 등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 특히 신앙 공동체는 세상과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여기에 본질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외부인이 우리 공동체를 면밀히 관찰한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게 될까요?

 

때로는 복음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변증은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내는 공동체의 질 그 자체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관계 속에서 세상의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 깊이 있는 진실함,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을 발견할 때, 그들은 우리가 믿는 복음의 실체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2. 두 가지 공동체 모델: 세상의 방식 vs. 복음의 방식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대조적인 모델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이 두 가지 관계 맺는 방식을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는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대조하여 그 독특성을 강조하십니다.

 

1. 일반적 공동체: '상호성'의 원리

 

세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일반적 공동체'는 상호성(reciprocity), '주고받는 관계'의 원리에 기초합니다.

 

이는 인간관계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며, 예수님은 누가복음 632-34절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예시를 드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해주는 것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고 빌려주는 것

 

이러한 상호성의 원리는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초를 이루어 왔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리며, 그 관계 속에서 안정감과 유익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한계 이 모델은 궁극적으로 자기중심적입니다. 내가 주는 사랑과 선행, 나눔의 동기 저변에는 언젠가 돌려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죄인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 방식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독특한 영광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어려움 속에서의 관계 상호성에 기반한 관계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쉽게 흔들립니다. 한때는 친밀했지만, 관계가 힘들어지거나 더 이상 내가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 관계는 쉽게 소외되거나 단절됩니다. 결국 우리는 유익을 주지 않는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게 됩니다.

 

  문화적 압력의 위험 권력, 명성, 성공을 끊임없이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문화 속에서 상호성의 원리는 더욱 위험해집니다. 더 나은 것, 더 큰 것을 좇는 과정에서 현재의 관계가 더 이상 자신의 성공에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 관계를 쉽게 배신하고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설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공을 향한 여정의 이면에는 그들이 배신한 수많은 관계의 파편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복음 공동체: '기대 없는 나눔'의 원리

 

일반적 공동체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복음 공동체'는 완전히 다른 원리 위에 세워집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것도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나누는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35절에서 이 혁명적인 삶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이것은 단순히 일회성의 친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계산 없이 베푸는 이타적인 나눔이 내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입니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나에게 아무것도 돌려줄 수 없는 사람에게 시간과 자원을 기꺼이 내어주는 지극히 반문화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세상의 방식인 상호성과 복음의 방식인 기대 없는 나눔. 이 두 모델을 비교할 때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과연 무엇이 이토록 급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가?

 

그 해답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이 아닌,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

 

3. 복음 공동체의 동력: '은혜의 복음'을 이해하기

 

복음 공동체를 형성하는 힘은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결심이나 도덕적 노력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 즉 복음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복음은 우리 삶을 지배하던 '상호성의 순환'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핵심에는 위대한 역설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죄의 문제를 '저 밖에 있는 죄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로 재정의하시는 독특한 수사법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바로 그들이 속한 범주,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충격적인 진단 위에 복음의 역설이 세워집니다.

 

우리는 성경이 부르는 그대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깊이 부서진 존재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 "죄인"이었으며(로마서 5:8),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의 범주에 속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성경은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즉 사랑받고, 소중히 여겨지며, 새롭게 된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전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입양하시고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팀 켈러 목사는 이 역설을 십자가를 통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십자가는 당신이 너무나 길을 잃고 죄가 많아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죽으셔야만 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당신이 너무나 사랑받고 받아들여진 존재이기에 예수님께서 기꺼이 당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이 이중적인 진리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상호성의 필요에서 해방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자격이 없는 무한한 사랑과 자비, 너그러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관계는 상호성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겨질 때, 우리 또한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사랑과 자비, 너그러움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심오한 신학적 진리는 추상적인 개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공동체 안에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세 가지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4. 복음 공동체의 세 가지 특징

 

복음이 공동체의 뿌리라면, 그 열매는 구성원들의 삶과 관계 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복음에 깊이 뿌리내린 공동체는 세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이 빚어내는 사랑, 너그러움, 자비라는 세 가지 핵심 특징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하는 공동체: 명예를 존중하는 행동

 

복음 공동체에서 사랑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인 행동과 연결됩니다. 로마서 1210절은 이 사랑을 실천하는 매우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outdo one another in showing honor)'는 권면입니다. 나와 의견이 같고 마음이 맞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 심지어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먼저 존경을 표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사람들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고 그의 의견을 존중하며 말 한마디에도 신중을 기할 때, 우리는 그 안에 사랑이 있음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그녀를 깎아내리는 말을 삼가며 세워줄 때, 그 행동에서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대를 존중하고 높여주는 구체적인 행동은 복음이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한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2. 너그러운 공동체: 시간을 내어주는 급진성

 

복음 공동체의 너그러움은 재물이나 재능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나눔은 바로 시간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시간', '가족 시간'을 신성한 가치처럼 여기며 필사적으로 지키려 합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매우 반문화적인 행동입니다.

 

3. 자비로운 공동체: 허물을 덮어주는 능력

 

복음 공동체의 자비는 단순히 친절한 태도를 넘어섭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자비는 "상대방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 하지 않는 것"이며, 잠언 1911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영광임을 아는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 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계속 곱씹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면에 쓴 뿌리로 자라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용서하고 넘어가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지 않는 것: 당장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무시했다가 나중에 공격할 무기로 삼기 위해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한 부부가 아이를 새로 맞이하고 이사하는 등 정신없이 힘든 한 해를 보내면서, 서로의 날카로운 말이나 실수에 대해 일일이 따지기보다 '허물을 덮어주기'를 의식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선하게 해석하고 사소한 잘못을 용서하기로 결단했을 때, 그들의 관계는 비난과 갈등 대신 이해와 아름다운 역동성으로 채워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자비를 공동체 안에서 흘려보내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사랑하고, 너그러우며, 자비로운 공동체의 모습은 우리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복음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결론: 행위가 아닌, 기쁨에서 비롯되는 공동체

 

우리가 세상과 구별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세우려는 동기는 하나님의 호의를 얻거나 그분께 무언가 빚을 갚으려는 의무감에서 비롯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상호성 관계로 회귀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는 목표 그 자체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복음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압도되어, 그 은혜를 기뻐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열매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과제는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리스도의 일, 즉 복음을 깊이 누리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에 집중하십시오. 우리가 그 복음 안에서 함께 기뻐할 때, 성령께서는 그 기쁨을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관계를 빚어내어, 세상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실 것을 신뢰합시다.


ⓒ 복음 중심 공동체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