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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중심 공동체


6과 겸손한 공동체

읽을거리 겸손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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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은 어떻게 함께 자라나는가

 

왜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한가?

 

구원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는 개인의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개인적인 선언이 신앙의 완성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며, 그 여정은 결코 혼자서 걸어갈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의 성장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방식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입양'만큼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비유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들어오는 두 단계의 입양 과정과 같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법적 선언'입니다. 성경이 '칭의(Justification)'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선포되는 순간입니다. 법적인 서류에 서명함으로써 한 아이가 가족의 일원이 되듯,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입양된 아이가 새로운 가정 안에서 그 가족의 언어와 유머, 문화를 배우며 점차 가족의 일부가 되어가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의 삶을 배워나갑니다. 공동체는 우리가 "신앙의 언어"를 배우고, "순종과 제자도"를 훈련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익히는 영적인 가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립된 채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라는 말이 진리인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신앙의 풍성함과 깊이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우고, 서로에게 사랑받고, 때로는 부딪히고 다투면서 함께 자라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1. 겸손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교만이란 무엇인가?

 

겸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편에 있는 교만의 본질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의 실체를 명확히 알 때, 비로소 겸손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만의 다양한 얼굴을 아는 것은 겸손을 향한 여정의 첫걸음입니다.

 

기독교 사상가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는 교만과 허영의 중요한 차이점을 지적합니다.

 

허영(Vanity):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크리프트는 이를 "영화배우는 허영에 차 있다"는 말로 설명합니다.

 

교만(Pride): 의지의 죄입니다. 이는 단순히 칭찬을 넘어, 자기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려는 욕망입니다. 크리프트는 "독재자는 교만하다"고 말하며, 교만의 본질이 "나의 왕국이 임하며, 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자기중심적 선언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교만의 핵심 본질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self-concern)'입니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미묘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다음에 뭘 해야 하지?', '내 일정은 어떻게 되나?'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도 교만의 한 형태입니다. 이는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보다 나의 계획과 필요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기 몰두의 증거입니다.

 

이것이 당신의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당신의 생각과 시간을 사로잡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중심에 자리한 우상입니다.

 

12세기 신학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aux)는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교만의 4가지 미묘한 표현을 제시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라는 뿌리에서 나옵니다.

 

1.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왜 내 생각과 내 말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가? 이는 자신의 의견이 반드시 들려져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표현입니다.

 

2. 남과 다르게 보이려는 노력: 왜 자신을 독특하고 구별된 존재로 드러내고 싶어하는가? 이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자 하는 욕망, 즉 자기 자신에게 쏠린 관심의 표현입니다.

 

3.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하는 것: 때로 우리는 '도움'이라는 명분 아래 다른 사람의 문제에 깊이 개입합니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이것이 종종 대화의 중심에 자신을 두려는 교만한 욕구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4. 자신을 방어하는 것: 오해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고 바로잡아야만 직성이 풀리는가? 이는 흠 없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는 강한 자기애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만의 모습들은 결코 교회 문밖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교만을 그대로 지닌 채 공동체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교만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며, 공동체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2. 공동체 안의 두 가지 교만의 얼굴

 

교만은 단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만은 크게 두 가지, '공격적인' 형태와 '수동적인' 형태로 발현됩니다.

 

이 두 가지 얼굴을 분별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교만의 모습을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공격적 교만 (Arrogant Pride):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다가와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는 권력과 지위, 명예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교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두려움의 교만 (Fearful Pride): 이 말을 들은 나머지 열 제자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노'합니다. 언뜻 보면 이들의 분노는 정의로운 반응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 역시 "왜 저들만 저런 기회를 얻는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자기 의와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에서 비롯된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교만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나옵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공격적 교만 (Arrogant Pride)
두려움의 교만 (Fearful Pride)
통제하기를 좋아한다.
리더십과 주도권을 회피한다.
다른 사람에게 둔감하다.
지나치게 민감하다.
재능 있는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본다.
재능 있는 다른 사람을 위협으로 본다.
다른 사람을 자신과 비교한다 (내가 기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 (그들이 기준).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기를 갈망한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한다.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수동적으로 비판한다.

 

특히 '두려움의 교만'은 스스로를 겸손하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기에 더욱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의견은 내지 않으면서 왜 내 의견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불평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겉으로는 소극적이고 조용해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몰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만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릇된 욕망을 꾸짖으시는 것을 넘어, 진정한 위대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3.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진정한 위대함: 섬김

 

세상이 정의하는 위대함은 권력, 지위, 명예를 통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위대함은 세상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는 '역전의 왕국' 논리를 따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진정한 위대함은 높아짐이 아닌 낮아짐, 즉 섬김을 통해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1042-44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핵심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것이 바로 겸손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정의하시는 진정한 위대함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겸손에 대한 중요한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존중하고, 양보하고, 섬기고,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번성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자신의 권리와 선호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위대함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놀라운 가르침을 아는 것만으로 우리가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라는 강력한 중력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해답 역시 예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4.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을까?: 예수님의 두 가지 역할

 

겸손은 단순히 의지를 다지고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덕목이 아닙니다.

 

만약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 중심의 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자기계발로 더 나아지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교만은 우리의 본성에 깊이 뿌리박힌 ''이기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중심의 해법이 필요한 이유이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겸손으로 이끄시는 데 결정적인 두 가지 역할을 하시는 이유입니다.

 

그 해답은 마가복음 1045절에 담겨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역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모델(Model)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기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시며, 결국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바로 섬김의 위대한 본보기입니다. 우리가 겸손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분의 삶을 바라보면 됩니다.

 

둘째, 우리의 중재자(Mediator)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ransom)로 주려"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속물'은 노예나 포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하는 몸값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교만, '자기 자신에게 노예가 된 상태'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자기 몰두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바로 이 노예 상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지불된 몸값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교만의 사슬을 끊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중재자이십니다.

 

결론적으로, 겸손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에서 해방시키시고, 동시에 우리 자신 대신 예배할 더 위대한 대상, 즉 예수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배가 자기 자신에 대한 몰두를 죽인다"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영광에 집중할 때, 우리 안에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됩니다.

 

이 복음의 원리는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겸손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여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5. 겸손을 향한 실천적 여정

 

예수님을 통해 교만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겸손해질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과, 그 능력을 사용하여 실제로 겸손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과정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겸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이제 우리는 그 자유를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겸손의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섬김에 대한 관점의 전환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자기중심적 질문에 갇히곤 합니다.

 

자기 중심적 질문 (피해야 할 질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나에게 이것을 할 시간이 있는가?"

 

이 질문들은 모두 ''의 능력, ''의 시간, ''의 평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 중심적 질문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 중심적 질문 (해야 할 질문):

 

"예수님은 내가 어디에서 그분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가?"

"예수님을 향한 나의 예배가 이번 주에 어떻게 내 삶으로 흘러넘쳐야 하는가?"

 

이 새로운 관점을 적용할 때, 우리의 섬김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의무감에 지친 사람의 경우: 만약 당신이 수많은 섬김으로 인해 지쳐있고 분노마저 느낀다면, 혹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두려움의 교만' 때문에 모든 요청에 ''라고 답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두려움의 교만' 때문에 모든 요청에 ''라고 답하고 있지는 않은지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저는 어떻게 당신을 섬기기 원하십니까?"라고 진정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려는 사람의 경우: 반대로 번아웃을 핑계로 모든 섬김을 극단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과연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삶의 모습인지 되물어야 합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섬김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사로잡힐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겸손, 그리고 기쁨의 섬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원리를 삶으로 살아내며 겸손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결론: 은혜로 살아가는 겸손한 사람들

 

진정한 신앙의 성장은 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가장 중요한 기초는 바로 '겸손'입니다.

 

우리는 교만이 공격적인 모습과 두려움에 찬 소극적인 모습 등 다양한 얼굴로 우리 안에 숨어 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 깊고 끈질긴 교만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신 겸손의 '모델'이시며, 우리를 교만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신 '중재자'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망은 '겸손해지려는 우리의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시는 예수님의 겸손'에 있습니다. 그 은혜를 힘입어 서로를 섬기고 함께 자라나는 겸손한 공동체를 이루어 갈 때,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 복음 중심 공동체 (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