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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ources] 복음 중심 공동체|은혜가 충만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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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과 두려움을 넘어 진정한 소속감으로

 

진정한 소속감과 은혜의 시작

 

누구나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환영받는 경험을 갈망합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복음 중심의 공동체는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넘어, 서로를 진심으로 환대하고, 사랑하며,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를 세우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 내면에는 은혜로운 관계를 가로막는 강력한 적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 안에서 은혜의 흐름을 막는 두 가지 적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은혜를 가로막는 두 가지 적: 교만과 두려움

 

은혜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는 은혜의 흐름을 차단하는 두 가지 강력한 적, '교만''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내면의 적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가 왜 그토록 진정한 소속감을 갈망하면서도 서로를 밀어내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첫걸음입니다.

 

1. 첫 번째 적: 교만 (Pride)

 

교만은 은혜의 첫 번째 적입니다. 교만은 단순히 자신을 높이는 태도를 넘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얻어내려는' 끊임없는 욕구입니다. 이는 그저 '수용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용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려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교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단지 수용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수용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필연적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도달하면, 자신은 수용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기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배척하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시몬은 교만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지만, 죄인인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자 마음속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 시몬은 죄인인 여인을 정죄했을 뿐만 아니라, 여인을 받아주시는 예수님까지도 '선지자가 아닐 것'이라며 배척했습니다.

 

이처럼 교만은 타인을 판단하고 관계를 단절시키며 은혜의 흐름을 막는 강력한 장애물입니다.

 

2. 두 번째 적: 두려움 (Fear)

 

은혜로운 공동체를 방해하는 두 번째 적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나를 결코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이는 나의 반복되는 죄와 깊은 상처 때문에 나는 결코 용납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믿음으로 굳어집니다.

 

교만이 타인을 밀어내는 '소외'로 이어진다면, 두려움은 스스로를 밀어내는 '자기 소외''자기 보호'로 이어집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 즉 연약함과 죄가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판단받고 거절당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면 뒤에 숨기고, 죄를 변명하거나 축소하며, 심지어 거짓말로 덮으려고 합니다.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의 모습을 포장하여 거절의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

 

누가복음 7장의 죄인인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으로 향했을 때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경건한 종교 지도자들이 모인 그 거룩한 장소의 문을 열기 직전, 그녀의 마음은 수치심, 죄책감, 그리고 거절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너무나 강력해서, 많은 경우 우리를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아서는 견고한 벽이 됩니다.

 

이처럼 교만과 두려움은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를 세우는 데 있어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두 가지 강력한 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파괴적인 내면의 적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2. 교만과 두려움의 극복: 예수님를 보고, 예수님에게 보임 받기

 

우리 내면에 깊이 뿌리내린 교만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행동의 변화나 의지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우리의 관점과 시선이 근본적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 해결책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을 바로 보는 것''예수님께 온전히 보임 받는 것'에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교만은 겸손으로, 두려움은 온전한 수용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을 보는 것: 교만을 무너뜨리는 겸손

 

교만을 무너뜨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 죄 없으심, 그리고 영적인 깨끗하심을 제대로 인식하면 할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의 죄와 불완전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이라는 완전한 기준 앞에 설 때, 우리가 스스로의 의로움을 내세우며 쌓아 올렸던 교만의 탑은 힘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보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단지 '선생님' 수준으로 보았습니다. 이는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선지자'의 반열에서 '선생님'으로 격하시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대한 사상가나 좋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 정도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영적 빚을 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반면, 죄인인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거대한 죄의 빚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두 빚진 자의 비유'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적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보다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더 크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영적 실상을 깨닫고 교만에서 벗어나 겸손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에게 보임 받는 것: 두려움을 이기는 수용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예수님께 나 자신이 '보임 받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보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감시당하거나 평가받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나의 가장 깊은 상처와 부끄러운 죄까지도 모두 아시는 그분께 있는 모습 그대로 '수용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향하여 몸을 돌리신 후,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이 질문은 시몬에게는 도전이었지만, 여인에게는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보셨을 때, 그녀의 삶은 변화되었습니다. 판단에 대한 두려움은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과거의 죄책감은 용서에 대한 감사로,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수치심은 예수님을 향한 섬김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보임 받을 때, 우리는 숨을 필요가 없으며 거절당할 걱정 없이 그분의 은혜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교만과 두려움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극복될 때,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는 공동체 전체의 문화와 행동 양식으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3.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의 두 가지 표식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는 반드시 공동체의 구체적인 문화와 행동 양식, '표식'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교만과 두려움을 넘어 예수님을 보고 그분께 보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니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은혜의 증거입니다.

 

1. 첫 번째 표식: 은혜를 받는 능력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의 첫 번째 표식은 '은혜를 받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깨어진 부분들, 즉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한 것이든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한 것이든, 그 모든 것을 이미 용서하고 치유하셨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이미 용서와 치유의 '깁스'를 제거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죄책감에 묶여 영적으로 기어 다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 나았다. 용서받았다"라고 선언하신 그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이처럼 치유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으로 걸어 나아가도록 서로를 격려합니다.

 

2. 두 번째 표식: 은혜를 베푸는 능력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의 두 번째 표식은 '은혜를 베푸는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은혜를 베푸는 것은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 타인에게 다가갑니다.

 

차별하지 않기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는 놀라운 다양성을 특징으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도덕적인 자와 비도덕적인 자, 종교적인 자와 비종교적인 자를 차별 없이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은혜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은 환영하면서, '바리새인 시몬'은 비판하고 판단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몬을 판단하는 그 순간, 우리는 그와 똑같은 시몬이 되는 것입니다. 단지 게임의 규칙만 바꿨을 뿐입니다. 진정한 은혜의 공동체는 죄인과 바리새인 모두를 차별 없이 환영하며, 모든 사람이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고 베푸는 공동체의 모든 능력은 단 한 곳, 바로 그 근원지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결론: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예수님의 발 앞

 

결론적으로, 은혜를 받고 또 은혜를 베푸는 공동체의 모든 능력은 결국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형성되고 힘을 얻습니다. 교만과 두려움이라는 내면의 적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소속감을 경험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모든 여정은 한 곳에서 시작되고 한 곳에서 완성됩니다.

 

그 중심지는 바로 '예수의 발 앞'입니다. 그곳은 우리의 교만과 두려움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보고, 동시에 그분께 온전히 보임 받으며 우리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공동체는 바로 이 예수의 발 앞에서 형성되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은혜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새로워집니다.

 

지금 교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혹은 두려움으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의 초대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습니다. 겸손하게 예수님의 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서 판단을 내려놓고, 가면을 벗어 던지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그분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마르지 않는 은혜를 경험하십시오. 그 은혜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며, 서로를 온전히 품어주는 공동체를 세워갈 것입니다.


ⓒ 복음 중심 공동체 (출처 교보문고)